더 크고 깨끗한 화면은 여기로 → http://www.kdemocracy.or.kr/610/movie.html
양치기소년 님 댁에 놀러갔다가 보게 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서 찾은 6월 민주항쟁 동영상.

어릴 때 살았던 동네에는 제법 큰 규모의  대학교가 있어서 오후가 되면 하얀 안개와 더불어 시끌시끌해졌다.
하얀 안개가 자욱해지고 사람들의 타타닥거리는 발소리가 잦아지면
할머니는 조용히 창문을 닫고 눈을 비비지 말고 눈밑에 치약을 발라두라 하셨다.
나른한 오후를 깨는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아득히 울리고, 그저 그런 것도 일상이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줄지어 큰소리를 내는지, 땡볕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는 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언니, 오빠들이 절박한 표정으로 마당으로 뛰어들면 할머니는 다만 조용히 대문을 닫고 물 한잔을 내주셨다.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종이학을 접어주던 언니와 이야기를 들려주던 오빠가 그저 좋았다.
땀냄새와 생기가 넘치는 그 언니, 오빠들의 등장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마냥 신나기만 했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기간 동안의 일은 유년기의 짧은 기억으로만 저장되었을 뿐이었다.

머리가 크고 드문드문 책으로 그 시기의 일을 접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직접적 체험과 사실은 겹쳐지지 않았다.
오래 전에 아주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인양, 참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에 본 '공룡 백만년 똘이'에서 나오는 공룡과도 비슷한 현실감이라고나 할까.
그도 그럴 것이 대학교를 다니면서 겨우 접한 이야기들은 모두가 거의 전설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선배들의 어조에서도 묘하게 느껴지는 괴리감, 이미 세대가 갈리고 있었다.
공식적인 교육과정 중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은 시대의 기억이란 그렇게 희미했다.
희미한 기억 대신에,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그지없게도, 다른 나라의 68혁명이야기나 떠들어댔다.

그리고 2008년 6월이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졌고 다시 함성소리가 들린다.
먼 유년의 기억 속에서부터 걸어나오는 익숙한 기분, 이 묘한 기시감.
그 기시감의 정체는 동영상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 함성이 가득한 바로 그 시간 그 곳을 나도 함께 걸어왔다는 것을.
최류탄이 터지는 소리가 익숙했고, 함성의 묵직한 톤과 '왜 잡아갑니까!'하는 아줌마의 외침이 귀에 익었다.
놀랍게도 화면을 통해 타임리프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1987년 6월의 서울, 2008년 6월의 서울. 그 둘은 놀랍게도 닮아 있었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다른 점은 우리는 좀 더 밝고 당당하며, 피를 덜 흘려도 된다는 것만 달랐다.
그리고 이렇게 당당히 떠들 수 있는 것은, 당신들만큼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20년 전에 소리치고 행진하던 당신들이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복잡하게 하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반응하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참으로 쉽게도 치워두었던 어린 날에 건네 받았던 종이학과 뜨거운 노래가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말을 걸어온다.
내 안에서도 오랫동안 살아있던 이 모든 기억들이 이제는 우리의 노래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당신들의 노래가, 아니 우리들의 노래가 헛되지 않게, 잊혀지지 않게,
기억이 시대의 증언이 되고 계승되는 시대 정신이 되고
그리고 진정한 역사가 될 때까지.


more..

신고
Posted by pinklotus 트랙백 2 : 댓글 4

티스토리 툴바